원시사회에 있어서 질병의 발생은 병귀의 소행으로 초자연적, 초인간적 능력을 가진 신의 힘으로 물리치려 하였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 무당의 주술적 치료법에 거의 의존하였다. 고조선 역시 초기에는 무주적 치료술이 질병 퇴치의 중요 수단이었으나 점차 약물에 의한 치료술이 발달하고 소위 기자조선 이후로는 중국계 유이민의 집단이주로 중국 의학이 도입되었다. 위만조선시대에는 한의 의료제도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한군현 이후 중국의학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 특히 낙랑군에는 의관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에 의한 중국의술의 전파는 토착사회의 의학발달에 자극제가 되었다.
삼국 중 고구려 의료제도 사료는 특히 적은 편이나 다만 고구려에도 중국의 것을 모방한 의료기구가 설치되어 의학교육과 민질의 치료를 담당하였을 사실을 일부나마 확인하였다. 백제는 남천 이후 중국 남조를 모방하여 약부 내에 의박사, 채약사, 주금사 등을 설치, 의학교육과 민질 치료 담당 등 정비된 제도를 갖추었다. 학문적으로도 상당 수준에 도달하여 일본에 의학관계자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전통적 의료제를 고수하다 법흥왕 이후 중국식 의료제를 도입, 체제를 갖추었고 통일 후에는 당제를 모방하고 이는 고려까지 이어져 우리나라 의료제도 체계 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삼국의 의학발달은 중국의 의료제도와 의서 수입을 통해 발달하였고 약재 교류도 활발하였다.
고대 사회 신앙과 의업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민간신앙으로서 무신앙은 질병치료에 깊이 간여하고 오늘날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불교 또한 질병치료에 큰 영향을 끼쳐 의승을 배출하였고 병고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실질적 의미로 신앙된 것이 약사신앙이다. 도교는 직접적 치료보다는 의생법 등을 전파하고 일월 성진 등에 대한 제의를 행하므로 민중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종교의 주술적 치료법은 질병치료에 자주 이용되므로 신앙이 의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말해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