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멸망 후 그 유민들은 4년간에 걸쳐 국가부흥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역사는 대체로 4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이 활동한 주요거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업적이 발표된 바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문헌 위주의 연구 외에 관계사적지에 대한 현지조사의 결과를 도입하여 새로운 검토를 하였다. 그 결과 1기에서 부흥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 두릉윤성에 대해서는 주류성과 동일시되어 왔는데 이 지점은 주류성의 위치와는 별개로 현재의 충남 청양군 정산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 중심거점으로 알려진 임존성은 통설인 예산군 대흥이 틀림없다.
2기에 부흥군의 활동범위는 금강이동으로 확대된 바 그 지역은 대개 현재의 대전일대에 해당한다. 이때의 주요지점으로 등장한 우술성은 대전시 교외에 위치한 회덕고읍 뒷산에 상당한 규모의 산성을 발견하였다.
제3기 초에 이르러 함락됨으로써 부흥군의 희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지라성, 이성, 사정, 대산 등은 그 위치지점이 금강의 동쪽과 서쪽으로 보나 금강의 동쪽에 위치함이 확인되었다.
제2기 이후에는 부흥군의 중심거점으로 주류성이 임존성을 대신해 중요한 지위를 확보하였는데 이는 주류성이 금강하류에 위치하며 당수군의 진입을 견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치고증에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필자는 한산 건지산성이 가장 유력하다.
백제유민의 부흥운동사를 통해 가장 유명한 지명으로 기록된 곳이 백강구, 즉 기벌포이다. 이 백강구의 위치에 대해 많은 견해가 있으나 금강하구로 비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