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악지에 남아있는 백제노래 중 무등산가를 빼고는 다 여인이 지어 불렀으며 그 중 세 편의 기다림을 시화하고 있다. 기다림은 흔히 수동적인 자세라고만 파악되기 쉽다. 그러나 <정읍사>에서 보듯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달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소망, 즉 달의 움직임을 노피곰, 머리곰 요구하여 그 달의 수직적 수평적 확대 능력으로 자신의 불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지야말로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님의 부재를 끝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백제 여인의 기다림이 순응적인 것이 아님은 <지리산>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구례현에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 가난하나 부녀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는데 백제왕이 아름다움을 탐내 차지하려 하자 지어 불렀다는 이 노래는 <도미의 처>설화를 연상시키면서 보다 적극적인 열녀의 표상을 보여 준다.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부귀영화를 보장한다 해도 죽음으로써 항거하는 여성상을 원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백제의 시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라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수로부인과 얽혀있는 <해가사>나 <헌화가>, <처용가>에서는 백제의 여인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여성상을 볼 수 있으니 설화에서도 도미의 처가 아니라 도화녀 형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이것으로 보면 신라 통일 이후 모든 문물이 신라 중심인 것에 비해 여인상만은 백제여인의 모습이 계속 전해여 백제문화권에서 춘향전 같은 작품이 탄생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읍사가 시대를 뛰어넘으며 사랑받는 것은 세월은 흘러도 여인들의 상황은 정읍사를 부르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만 이 노래는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미의식,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한 백제인의 미의식이 시로 형상화되어 이후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한국의 여인상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