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七支刀 제작당시의 국제관계
3. 谷那鐵山의 위치
4. 谷那鐵山의 의미
5. 마무리
요약
本考는 칠지도를 만든 철의 산지로 등장하는 谷那鐵山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백제에게 있어 谷那鐵山이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동안 칠지도의 제작시기에 대해 日本書紀의 기록에만 의존하여 神功 49년(369년)에 있었던 사건의 결과로 372년 백제에서 왜로 전달되었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는 칠지도가 왜국과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던 腆支王에 의해 408년 백제왕세자인 久爾辛의 탄생을 계기로 왜왕에게 제작, 하사되었던 것이 확실시 된다.
특히 칠지도가 만들어진 408년은 廣開土王碑文에 나오는 사건과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시기로서 칠지도는 5세기초 백제가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谷那鐵山의 지명비정에 대해서도 그동안 황해도 곡산, 전라남도 곡성, 충청북도 보은, 충주 등지로 논란이 많았지만, 谷那鐵山은 4세기말~5세기초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황해도 일원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여 예성강 상류에 해당하는 황해도의 곡산, 수안 등지로 비정된다.
이처럼 백제의 고토를 회복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谷那鐵山의 七支刀는 왜왕을 侯王으로 위치시킨 백제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왜와 대방계 탈환이라는 합동작전을 수행했던 상징물로서 백제가 왜왕을 후왕으로 하여 화친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한 대표적인 표징이 되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