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교역 활동
Ⅲ. 고대의 생산품과 교역
Ⅳ. 한반도와 왜의 철 교역
Ⅴ. 백제의 지정학적 위치와 대외 교역의 통제
Ⅵ. 결론
요약
한반도 중남부는 리아스식 지형으로 도처에 항만이 발달하여 해상 교통에 유리하였고 이에 따라 이른 시기부터 바다를 통해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명도전이나 도씨검 등의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 자료의 기사를 통해 적어도 서기전부터 3세기말까지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를 잇는 국제 교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이처럼 활발하게 진행된 교역에서는 보리, 콩, 벼 등의 곡물류와 布, 목재, 토기, 칠기 등이 교역 물품화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고대 국가 성장의 경제적 기반으로 주목되는 철 생산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직접적인 제철 유적지가 발견되고 있지 않아 자세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방증으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철을 생산·교역하였다고 추측되며, 4세기 이후 ‘덩이쇠’ 즉 철정의 형태로 본격적인 생산과 교역이 이루어진 듯하다. 서기 1세기경 領域 國家로 성장한 백제는 2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이미 중국과 겨룰 정도로 강대한 세력이 되어, 서기 3세기까지 교역의 주도권은 여전히 중국 세력에게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백제의 저항은 만만치 않아 백제와 중국 세력의 충돌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기 4세기의 시작과 함께 ‘5호 16국’ 시대의 대두로 북중국이 유목민족에게 점령당하고, 고구려에 의해 서기 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과 대방이 멸망당함으로서 동북아시아의 국제 교역 체계가 무너졌던 것이다. 따라서 백제는 근초고왕의 등장과 함께 중국의 퇴장으로 힘의 공백이 생긴 틈을 노려 차제에 백제가 교역을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교역권을 형성하려는 의도를 갖게 되었고 그러한 의도가 바로 남방 즉 가야와 마한에 대한 정벌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