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5방제를 편제한 배경은 전대의 제도에서 나타나는 제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이 조성된 국내외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기존 연구에서는 전대의 유일한 제도로 담로제를 상정함으로써 실시 배경에 대한 검토 방향에서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 5방제가 편제되기 이전 백제의 지방통치는 5부와 담로가 병존한 이원적 형태였으며, 오히려 주된 역할을 수행한 것은 5부제로 담로제는 한정된 일부 특수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제도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의 5방제 편제 배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원적 지방통치체제의 과정에서 야기되었던 문제점과 웅진천도를 전후한 시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유기적 검토가 필요함을 지적할 수 있다. 그 결과 5부제와 담로제라는 각기 다른 제도의 상존에 따른 국력의 분산을 극복하여 전 통치영역을 일원적으로 직접 지배함과 동시에 475년 대고구려전에서 노출된 방어체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5방제를 편제한 것이었다.
5방제의 실시 시기에 대하여는 대체로 웅진시대, 사비천도를 전후한 시기, 사비천도후 위덕왕대, 6세기 전반부터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성립되었다는 견해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5방제의 성립이 전대 지방통치제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음을 감안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웅진 천도 이후 오래지 않은 시기에 보다 정비된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 사료를 검토한 결과 백제는 6세기 전반경 부소산성과 나성을 축조하는 등 치밀한 계획 아래 사비천도를 준비하고 있었고, 웅진 도읍기에도 왕도 5부제가 확인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5방제 역시 사비 천도 이전인 웅진시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관련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새로 정복한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배력 행사 과정과 방식을 알 수 있었는데, 군사적인 진출이 이루어진 이후 그 지역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본격적으로 행정구획화 작업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방통치가 자리 잡게 된다. 이들 사료를 통하여 5방제가 시행된 시기는 무녕왕 12년(512)을 전후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백제는 웅진으로의 천도 이후 지방통치제도를 적극 추진한 결과 무녕왕 12년을 전후한 시기에 근초고왕대의 남방경략 이후의 새로운 복속지를 중심으로 설정되었던 담로를 직접 지배체제내에 편입하고 5방제라는 일원적 지방지배를 완성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무녕왕은 대내외적으로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공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