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곤지의 도왜 시기에 대하여 보다 정밀하게 검토하여 구체적 시기를 확정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파견 시기는 무녕왕의 탄생 시기와 맞물려 있으므로 무녕왕 묘지석의 내용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백제의 연령 계산 방식을 어떤 경우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인데 여기서는 율령식 연령 계산 방식과 滿으로 계산하는 방식 두 가지를 놓고 검토해 본 결과 먼저 전자일 경우에는 「百濟新撰」에 의거한 461년 출생설은 명백한 잘못이며 462년이 올바르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묘지석의 내용과 모순되지 않기 위해서는 雄略紀의 同5년 6월 출생설은 부정될 수밖에 없으며 적어도 461년 5월 7일 이전에 태어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곤지의 도왜 연대도 이러한 무녕왕의 출생 시기에 연동되어 462년 도왜 아니면 461년 1월~4월 사이의 어느 시기 둘 중 어느 하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두 번째 곤지의 파견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請兵使의 이미지가 정착해 있으나 단순한 청병사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나제동맹기에 접어든 백제가 자국 중심의 국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왜국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 때문에 곤지가 직접 파견되었다고 이해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