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Ⅰ. 해양강국으로 부상한 백제
Ⅱ. 외부세력의 반격과 백제의 시련
Ⅲ. 海洋强國 재건을 위한 백제의 노력
맺음말
요약
4세기에 들어 동아시아 국제교역의 대리역을 수행하던 낙랑․대방군이 고구려에 의해 축출되자, 백제가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리고 근초고왕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고, 그 결과 백제는 해양강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부터 고구려가 반격을 가하면서 동아시아 국제교역의 새로운 장애물로 대두하였다. 백제는 주변국가를 설득하여 반고구려 국제연대를 결집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고구려의 강력한 저지선을 돌파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백제의 해양강국 재건의 꿈은 무령왕대에 이루어졌다. 신라․가야․왜, 그리고 중국 왕조와의 연맹관계를 회복․강화하고, 고구려를 압도하면서, 서해와 남해의 연안항로를 재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백제는 다시 동아시아 국제교역을 주도적으로 중개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성왕 대에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바로 신라의 도전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제와 신라는 서로 라이벌 관계를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연안항로의 경색 국면 타개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실현하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방해꾼 고구려의 공격에 힘을 합쳤다. 그러나 이는 동상이몽이었다.
마침내 551년 백제와 신라 군대의 고구려 공격 작전이 개시되었다. 백제는 한강하류로 곧바로 진격하여 한성을 탈환하고, 신라는 동으로 죽령을 넘어 철령에 이르는 10군을 차지하였다. 마침 내전에 빠져서 국력이 크게 쇠잔해 있던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의 협공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백제와 신라 사이에 새로운 갈등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라의 진흥왕은 한강하류 지역을 라이벌국인 백제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즉 553년 오늘날 이천지역에 남천주를 설치하여 진군을 위한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이를 교두보로 삼아 그 이듬해에 한강하류에 대한 공격을 전격 감행하였다. 결국 성왕은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전사당했으며, 한강하류 지역은 신라 차지가 되었다.
진흥왕은 557년 북한산주를 설치하여 한강하류를 지키는 군단을 주둔시켰으며, 불한산에 순수비를 세워 한강하류 탈취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였다. 이는 결국 신라가 중국과 연결 할 수 있는 해양 통로를 확보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삼국 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