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경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 위치하는 낙동강하류지역의 금관가야가 왜와의 교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던 원인 중의 하나는 전략물자인 철 수출과 수입에 있어서의 지리적 이점이다. 본고에서는 이 지리적 이점의 원인이기도 한 4~5세기 왜의 항해능력을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추정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된 분석 대상이 된 고고학적 자료는 4~5세기 일본열도에서 발굴된 선박형 토기와 선박형 회화이다.
한편 5세기경 되면 왜에서 한반도로의 교역루트가 낙동강 하류지역 뿐만 아니라 낙동강 서쪽의 가야 서부지역, 그리고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백제지역으로 다원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왜가 한반도 서남해안에서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범선이 이용되었던 명료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서남해안의 연안항로를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항로상의 여러 정치체와의 우호관계 유지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우호관계 유지를 기초로 5세기경 왜에서 가야․백제로의 교역루트 다원화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