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世紀中葉,朝鮮半島三國紛爭不息,後起的新羅逐漸利用自己的發展優勢,采取"遠交近攻"策略,和遙遠的大陸政權唐朝建立藩屬同盟關系. 隨著時間的推移,同處半島的百濟‧高句麗相繼滅亡,新羅完成半島的統一. 百濟滅亡後,百濟王扶餘義慈及其臣僚百姓萬餘人離開故國流入唐朝,另外一些人逃亡日本,開始了他們惶恐矛盾不能選擇的人生歷程. 關於百濟遺民在唐生活關聯問題,中國學界自民國時期金石學家羅振玉以來,積累了一些重要研究成果,取得了一定的突破.
7세기 중엽, 한반도에서는 삼국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뒤늦게 흥기한 신라가 점점 우월적 발전을 이용하고 ‘원교근공’정책을 펼치면서 대륙정권인 당나라와 번속의 동맹관계를 형성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백제와 고구려가 순차적으로 멸망하고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했다. 백제 멸망 후 백제왕 부여의자 및 그 신하와 백성 만여 명이 고국을 떠나 당에 들어왔다. 그리고 일부는 일본으로 도피하였다. 당나라 내 백제 유민의 생활과 관련하여 중국학계는 민국시기 금석학자인 나진옥 이래 중요한 연구를 축적하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본문은 주로 기왕의 중국학계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당나라 안의 백제 유민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