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백강전쟁
백강전쟁의 배경과 동아시아 세계
한반도의 통일과 동아시아 세계의 정립
맺음말
요약
663년 8월 27일, 28일에 걸쳐 일어난 백강구 씨움은 일본군과 당군의 대결이나 이때 백제부흥군과 신라군이 각각 일본군과 당군을 엄호하였고 고구려군은 직접 참여한 기록은 없으나 일본의 백제구원군이 고구려 구원을 표방하고 군무를 고구려에 가서 긴밀히 상의한 점을 보아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였으므로 백강구 싸움은 당시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뒤엉킨 싸움이었다. 이를 일본학자들은 고대제국주의 전쟁설을 주장하고 한국학자들은 조국부흥전쟁설로 주장하는데 이는 자국 중심, 일국 중심 사관에 지나지 않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은 백제 정토를 계기로 한반도는 물론 일본열도까지 그 영향 하에 두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정토할 때까지 신라를, 그리고 신라와 싸울때에는 일본을 끌어들이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당을 끌어들였지만 당이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려 하자 분연히 맞서 싸우고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일본과 손을 잡고 당에 대항한다. 일본은 한반도가 당의 영향 하에 들어가는 것은 곧 일본열도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며 백강구 싸움에 참전한다. 따라서 백강구 싸움에서 패배한 뒤에는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신라와 손을 잡고 당애 대항한다.
백강구 싸움의 결과 신라, 당, 일본이라는 오늘날 동아시아 세계의 기본틀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백강구 싸움은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틀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