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한반도 諸國과의 관계
Ⅲ. 對 일본 관계의 특징
Ⅳ. 對 중국 관계의 양상
Ⅴ. 맺음말
요약
무령왕 즉위년부터 성왕 28년까지 약 50년간 백제의 대외관계는 고구려와의 전투가 중심을 이룬다. 백제는 신라와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고구려 압박에 대처하였으나 백제와 고구려의 갈등은 신라가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신라는 한강유역을 확보하고 대가야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신라가 대가야를 점령하기 이전 일본의 대한반도 교류의 중심창구는 백제였다. 백제는 일본이 요구하는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일본은 그 댓가로 대고구려전과 신라전을 위한 군사원조를 지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6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대륙과 한반도 내에서의 제국 사이의 상쟁과 각축이 치열해져 종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불안정한 형세가 되었다. 562년 대가야 멸망을 기점으로 백제의 대일본관계는 변화 양상을 보인다. 일본서기 흠명 21년~민달조 사이에 일본에 사신을 활발히 파견한 것은 신라이다. 백제와 일본이 38회의 교류를 가진 6세기 전반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562년 이전 백제는 가야-일본으로 이어지는 협력라인을 구축하며 때로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하에 대처하였다. 따라서 백제는 일본에게 선진문물을 제공하면서 대고구려전, 신라전을 위한 군원을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가야 멸망을 계기로 백제-가야-일본으로 이어지는 협력라인이 붕괴되면서 일본이 백제뿐 아니라 신라, 고구려에 대한 다면외교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6세기 후반 백제의 대일본 관계는 일본이 백제 중심의 외교에서 실리에 따른 다면외교로 변화함으로써 더욱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백제의 대일본관계는 대가야 멸망 이후 소원해지기도 하였으나 백제 국가는 일본에 대한 지속적인 선진문물의 제공으로 기존의 대일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자국의 위상 제고와 고립화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 뿐 아니라 중국 남북조와도 교류를 활발히 하였다. 위덕왕은 중국 남조로 편중된 대중국관계를 벗어나 북조인 북제와 통교하는 등 남북조시대 말기의 중국 정세 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6세기 백제 국가는 동아시아 국제 관계 속에서 자국의 발전과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도 다양한 외교관계를 펼쳐나갔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