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성 백제의 남한강 수로 개척과 운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남한강 수로는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내륙수로였다.
백제가 남한강 수로를 개척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었던 세력은 靺鞨(滅)이었다. 백제와 말갈은 3세기 이전부터 자주 충돌하였다. 백제는 수세적인 입장에서 말갈이 침입하는 길목에 城柵을 쌓아 대비하였다. 백제가 말갈에 대해서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후반이었다. 말갈 침입 기록은 258년(고이왕 25년)이후 사라졌다. 이 시기를 전후로 백제는 영서지방의 말갈 세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남한강 수로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도 점차 확대되었다.
백제가 남한강 상류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수로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집단은 법천리 세력이었다. 이들은 남한강 수로 주변 지방세력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큰 집단이었다. 법천리 일대가 영서지방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배경으로 세력을 성장시켰다. 백제가 남한강 상류 및 영서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을 포섭하여야했다.
법천리 고분군 발굴조사 결과, 백제가 법천리 세력과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후반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교류는 4세기 후반이었다. 이 때부터 백제는 법천리 세력과 연합하여 한강 하구에서 충주까지 남한강 수로로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5세기 전반까지도 백제는 남한강 수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5세기 중반에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자 사정은 급하게 변하였다. 남한강 상류지역이 대부분 고구려의 군사적 지배를 받게되었다. 이 시기에 백제는 남한강수로 경영권을 상실하였다. 이후 잠시 공백기를 거쳐서 475년 이후 고구려가 남한강수로를 장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