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Ⅰ. 新羅의 始祖墓와 그 祭祀
Ⅱ. 高句麗의 始祖墓와 그 祭祀
Ⅲ. 百濟의 始祖墓와 그 祭祀
맺음말
요약
계급사회로 들어서면서 여러 잡신들 중에 지배자는 처신에 대한 제사의례를 통하여 지배권을 확립하려 하였다. 이러한 제신들의 서열화 과정 속에서 천신이 정점을 이루게 되며 결국 치프덤 단계에서 제천의례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가형성이 본격화하면서 지배자는 천자 또는 천손이라는 의식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삼국은 각각 천강신화를 낳고 그 천의 자손임을 강조하고 그 시조에 대한 묘를 세우고 이에 대한 제사의례를 통하여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사의례를 통해 내적인 지배이데올로기로서 활용하고 주변의 세력을 정복할 수 있는 배타적 지배이데올로기를 확립한 것이다. 따라서 시조묘제의는 고대국가형성의 가장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며 삼국지 한전에 보이는 대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소국에서의 천신에 대한 제의가 마침내 대국에서는 천의 자손에 대한 제의로 발전된 양상이라 하겠다. 여기에 시조묘제의가 지니는 정치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와 백제는 일찍이 시조묘제사와 아울러 천지신 제사가 함께 이루어졌으나 신라는 뒤늦게 천지신 제사가 이루어진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와 사회발전에 있어 차별성을 보이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