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삼국유사의 한 편목인 왕력의 찬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일연은 기이편을 제편의 머리에 둔다 했고 삼국유사 권1은 중복되는 점에서 그 이유는 왕력이 뒤에 첨가되거나 왕력의 부록적 성격탓이라 할 수 있다. 또 왕력의 기사와 제편의 기록 사이에도 다른 내용이 나타난다. 재위년수 계산 방법의 차이, 신라에서의 시호나 마립간 칭호의 사용 시기에 대한 상이한 기록, 백제 무왕의 존재 여부에 대한 엇갈린 주장 등이 그것이다. 왕력편 중의 가락국력과 기이편에 수록된 가락국기 사이에도 상이한 기록이 있다. 최근 발견된 역대연표는 일연이 14년 동안 주재하던 인흥사에서 1278년 개판되었다는 점에서 일연이 그 찬술에 관계되거나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역대연표도 왕력과 재위연수 산출 방법, 신라 왕명 표기 등의 차이가 있다. 일연이 전후항목 사이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기술하는 태도를 염두에 두고 왕력과 제편 사이의 괴리를 생각할 때 왕력이 일연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기에 생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왕력편은 일연 또는 후대인에 의 한 첨가라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삼국유사는 일연 찬술이 아닌 가락국기가 수록된 예가 있고 제자 무극이 일연 이후 첨가한 기록도 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왕력이 찬술된 시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종래에는 왕력을 최치원의 제왕연대력의 축소판인양 이해한 경우도 있었으나 왕력에 금주, 동주 등의 지명을 볼 때 고려 충선왕 2년 이전에 쓰여진 것은 확실하고 제왕연대력과는 무관할 것이다. 또는 일연이 삼국유사에 다른 기록을 덧붙여 간행한 시기에 왕력이 첨가되었을 수 있다. 왕력은 일연에 의한 직접 수록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일연은 자기 견해와 다른 기록일지라도 그대로 수록하는 서술태도, 왕력이 충선왕 이전에 쓰였던 점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분별히 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왕력이 일연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닐 것임과 삼국유사 체제상 왕력이 부록적이라는 점만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