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문화단계 이래 한강이남의 대표적인 정치체로서는 韓과 辰國을 들 수가 있다. 이중 韓은 경상, 충청, 전라 지역 정치체들에 대한 총칭이며 辰國은 한강유역의 제세력의 대표격 존재이다. 두 세력은 위씨조선시대에 시기를 같이하여 共在하고 있었다. 위씨조선말기에 파생한 유이민집단의 파동에 의해 辰國세력이 해체되자 한강유역에서는 선주토착집단과 後來이주집단 사이의 세력재편성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소국들이 나타나고 온조계집단의 남하, 건국도 이때 이루어 진 것이다. 온조계집단의 남하 후 하북위례성에 十濟를 세웠다. 그러나 낙랑과 말갈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하남위례성으로 옮기게 되고 세력기반의 확대를 보게 되자 국호를 百濟(伯濟)로 개칭하였다.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百濟는 다시 미추훌세력과 연맹을 형성했고 이를 보여 주는 것이 비류와 온조의 형제설화이다. 연맹체의 성립 초기에는 미추홀세력이 영도권을 잡았으며 解氏가 王姓으로 남게 되었다. 그후 위례세력이 농업경제력의 증대를 바탕으로 연맹의 주도권을 잡아 부여씨왕계가 확립되었다. 이처럼 연맹체 내에서 왕실교체가 이루어진 시기는 宵古王代로 보인다. 백제가 十濟에서 百濟로 한강유역의 소국연맹체의 맹주국으로 성장해감에 따라 마한과의 관계도 새로이 정립되어야 하였다. 마한연맹체는 처음에는 익산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準王집단이 남하하여 일시적으로 맹주권을 잡기는 하였지만 다시 익산세력(乾馬國)에로 넘어 가게 되었다. 그후 마한연맹체가 영도력을 한강유역에까지 확대 하자 어느 시기엔가 目支國이 마한의 맹주국으로 등장하였으며 칭호도 초기의 韓에서 辰王으로 변화하였다.
온조집단이 하북위례성에 정착하여 十濟 건국한 것은 마한의 보호와 그 영도권의 인정 하에서 가능하였다. 그후 백제로 발전을 본 초기 백제는 마한연맹장의 不得自立爲王하는 정치적 한계성 하에 한강유역의 맹주세력으로 성장하였고 2C중엽에는 맹주권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3C중엽까지는 맹주권은 目支國에 있었던 것 같다.
백제와 마한과의 관계의 결정적 전환은 백제의 目支國 병합이며 그 시기는 대체로 3C후반이후, 즉 古爾王系가 왕위를 이어가던 시기이며 이후 마한연맹체는 益山의 乾馬國을 중심으로 그 여맥을 잇게 된 반면 백제는 고부지방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또 집권력의 성장을 보게 되자 대외적으로는 백제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