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百濟史를 보는 시각
Ⅱ. 百濟史의 성격
Ⅲ. 『三國史記』에 나타난 百濟前期社會相
Ⅳ. 백제전기사회의 성격
요약
우세한 철기로 무장된 북방계유이민 집단은 비옥한 한강유역의 경제력을 흡수하여 일찍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이를 촉진한 것이 주변 여러 국가와의 전쟁이다. 결국 이러한 여러 국가의 침입이 백제로 하여금 국가 성장을 촉진시켜 주었지만 그것이 점차 역기능으로 작용됨으로서 한강 유역의 개발에 한계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5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옥한 한강 유역의 상실은 일시적으로 왕권 강화와 국가적 부흥을 꾀할 수 있었으나 결국 백제 사회의 전반적인 성격변화와 약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의 평양천도가 결국 고구려정신의 변질과 국가 쇠락의 단초가 된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백제사화의 한계를 바꾸고 재도약의 계기를 서해제해권확보로 이룩했으나 그것도 국내 정치의 혼란과 려·라의 압박으로 실패하였다. 3국에서 제일 먼저 왕권강화와 국가체제를 이루었지만 이러한 사실은 도리어 조로현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백제는 비록 이러한 국난과 시련 속에서도 바다를 지키려는 굳건한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선진문화를 왜에 전달하는 문화강국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이와 같은 백제의 기본 정신인 전제왕권의 유지와 해외진출 등은 웅진시대나 사비시대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백제 전기의 성격은 곧 백제사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