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업 생산은 그 주체에 따라 왕실․국가 혹은 관영․귀족․사찰․민간 수공업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왕실수공업이 고대국가에서는 가장 높은 기술 수준을 보유했고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체제적으로 정립되었다. 이 글은 백제의 왕실수공업을 대상으로 하여 그 성립 과정과 생산체제의 변천을 시론 삼아 검토해본 것이다.
백제의 왕실수공업은 마한 소국 시기부터 선진 기술을 수용하고 전문 장인들을 포섭하면서 확대된 생산 기반을 토대로 하여 점진적으로 성립되었다. 구슬류의 장식품 생산이 상대적으로 일찍이 왕실수공업으로 정착했고, 견직, 고급 마직의 직조 및 봉제 수공업, 흑색마연토기, 삼족기 등 특수 토기 제조업이 뒤를 따랐다. 근초고왕대의 백제 왕실은 다른 지역 수장과 차별화된 고급 수공업 생산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규모가 전보다 확대되므로 전투장비 생산 부문 등 일부 관영수공업도 분화되었다. 4세기 초․중엽이 백제 왕실수공업이 성립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그 생산체제는 博士制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박사로 임명된 수공업자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휘하에 자신보다 숙련도가 낮은 장인들을 거느렸다. 이들을 관리․통제하는 관인 혹은 관부도 설치했으니 長史, 司馬․ 參軍처럼 중국식 관명을 띠는 국왕 직속의 屬僚的 존재를 그 후보로 생각할 수 있다. 백제의 왕실수공업은 생산품별로 수공업장이 조직되었고, 박사급의 숙련 장인과 하급 장인들로 구성된 수공업자 집단이 하나의 단위가 되어 공방을 운영하는 체제로 생산이 이뤄졌으며, 국왕의 속료 조직이 이들 수공업장 조직을 장악했다. 이러한 생산체제를 기초로 하여 후대에 발전된 결과가 사비기의 內官 소속 수공업 관부이며, 왜국의 율령체제와 결합해서는 品部로 변형된다.
웅진기 후반에는 전국에 산재하는 원료 산지를 왕실이 장악하고 중앙에서 활동하는 그 지역 출신 장인 혹은 수공업 관부의 관인을 활용하여 생산이 이뤄졌다. 이러한 왕실수공업 중심의 생산체제는 이후 변화하여, 일부 촌락이 특정 물품을 생산하여 중앙에 납부하는 국가적 차원의 수취체계에 입각한 새로운 생산체제가 성립한다. 무왕대 무렵 내관 조직에 변동이 생겨 왕실수공업 관련 관사 중 일부가 폐지된 것은 이러한 수공업 생산체계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