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冊封ㆍ朝貢에 대한 고구려의 인식
Ⅲ. 冊封ㆍ朝貢에 대한 백제의 인식
Ⅳ. 맺음말
요약
남북조와 고구려, 백제가 맺은 책봉조공관계는 외교형식상 일정한 보편성을 갖더라도 구체적 내용에서 다양한 층위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책봉국과 피책봉국 상호 관계만이 아니라 각각이 갖는 서로 다른 전략과 인식에 의해 규정된 결과이다. 책봉과 조공이 갖는 현실적 기능도 서로 다르고 인식도 차별적이었다. 이를 전제로 책봉, 조공이란 외교형식이 전개되었고 결과는 피책봉국의 자립성과 독자성에 대한 책봉국의 용인이었다.
고구려는 남북조 양쪽과 책봉조공 관계를 맺지만 그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위에 대해 지속적인 조공관계를 유지하지만 국가 간 신속관계로 인정하지 않아 북위는 이러한 고구려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동북방에서 고구려에게만 책봉호를 주었는데 이는 곧 고구려 세력권을 보장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공관에 대한 차이로 양자 사이에 충돌가능성음 잠재되었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책봉, 조공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백제는 남조하고만 책봉조공관계를 유지하는데 백제왕의 책봉호와 거기에 근거한 신료들의 관작 책봉이 백제 내부에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신료의 관작은 백제왕이 요구하는대로 인정하여 책봉되는 점이 독특하다. 더욱 왜와 남조의 책봉관계도 이와 유사한데 왜왕의 경우 자칭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격을 드러내 다양한 형태의 책봉관계를 알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남북조시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하나의 책봉조공체제로 파악한 견해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남북조시대는 중원왕조가 분열됨으로써 피책봉국이자 조공국의 주체적 입장이 책봉조공관계에서 보다 강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그러나 중원의 통일 세력 수는 백제나 고구려에 훈관과 작호로 구성된 책봉호를 수여할 뿐, 남북조시대 내내 구성요소였던 군사권의 범위와 위상을 나타내는 지절호, 장군호, 도독제군사호 등은 보이지 않고 고구려의 경우 독자세력권을 상징하는 동이교위를 수여받지 못했다. 이는 4세기대 이래 주변 제국가의 현실적 지배력을 상호 인정하던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이 변모하고 중국 중심의 일원적 국제질서의 수립을 보여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