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賄書에서 도용한 유랴쿠(雖略)天皇 유언
2. 日本書紀의 편수(續修) 방침
3. 백제 記事의 출처
4. 기록된 왕조교체와 기록되진 않은 왕조교체
요약
『日本書紀』는 日本紀라고도 하는데 사서의 체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정사가 견본으로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하나로 北朝 魏의 정사인 魏書를 들 수 있다. 北朝는 興安嶺 북쪽에서 진출한 鮮卑族이 魏를 국호로 하여 건국한 왕조로, 마침내 華北을 통일하여(439년) 漢族인 南朝와 대치했다. 魏書에 따르면 선비족은 전설상의 黃帝로부터 시작된다. 그 25명의 자식 중 한명이 北士에 책봉되어 67대를 거쳐 成皇帝에 이른다. 黃帝의 이름이 15대 이어지다가 시조(始祖)인 神元皇帝가 즉위한다. 즉 신대(神代)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의 (代 )는 모두 黃帝라고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北魏의 神元皇帝는 晉의 武帝가 삼국시대의 魏에서 선양(禪讓)을 받은(265년) 무렵의 인물로, 그 아들은 武帝를 섬겨 후우(厚遇)를 얻었다고 한다. 魏를 국호로 하여 건국한 것은 그 이후 10대 백년을 지난 태조 道武皇帝 때의 일이다.(386년). 그 선조에게 모두 皇帝의 호를 부여한 것은 천명을 받아 건국한 이후의 일이다. 『日本書紀』의 경우도 신대(神代)에서 시작되고 진무(神武)天皇이후는 모두 天皇이라 칭하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천명을 받아 즉위한 이후의 일일 것이다. 『日本書紀』의 天命開別天皇이라는 인물은 나카노오에(中大兄: 후의 텐지(天智)天皇)이다. 魏書는 北齊 魏收의 찬(撰)(성립554년)으로 편수의도가 두드러진 사서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傳)은 있지만 倭國傳은 없다. 즉 倭國은 北魏에 조공하지 않았으므로 무시된 것이다. 더욱이 倭國傳이 없을 뿐 아니라 高句麗傳이나 百濟傳 안에도 廣開土王과 倭國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취급을 참고로 한 때문인지 日本書紀도 南朝에 신종(臣從)한 치쿠시(筑紫)정권의 사실을 전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