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地理的 環境
Ⅲ. 樂浪之路와 對靺鞨 戰鬪
Ⅳ. 禮成江 流域 및 平壤城 進出路
Ⅴ. 맺는 말
요약
한성 백제의 대외발전은 북방으로의 진출이 먼저였다. 백제가 가장 먼저 개척하고 정비한 교통로도 북방교통로였다. 낙랑과 말갈 등과 전투를 위해서는 먼저 북방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하였고 이는 교통로의 정비를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북방교통로는 분명하지 않다. 낙랑 말갈 등과의 전투기록을 통해서 대략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필자는 경기도 북부와 황해도 일대의 지형을 분석하여 자연적일 교통로를 먼저 살펴보았다. 육상교통로의 경우 가장 먼저 자연지형을 활용한 교통로가 등장하고 개착되거나 정비되어 고대국가의 기간 교통로로 이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백제시대 북방교통로의 개척을 살펴보기 위하여 낙랑 및 말갈과 전투지역을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선학들의 연구가 있었으나 대체로 지명에 대한 어학적 분석이 주로 이루어져 학자마다 차이가 컸다. 필자는 자연지리적인 조건과 『삼국사기』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여 나름대로 위치를 다시 비정하였다. 구체적인 위치를 비정하기 어려웠지만 연천과 포천 일대에서 주로 전투가 일어났고 개성 일대도 전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투기록을 중심으로 백제의 예성강 유역 진출로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백제는 주로 자비령로를 북방진출로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의 예성강 유역 장악과 평양성 공격의 전진기지로 역할 하던 것은 수곡성이었다. 수곡성의 함락으로 백제는 예성강 유역에 대한 방어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더구나 392년 광개토왕이 예성강 하류를 점령함으로써 백제는 자비령로를 상실하게 되고 백재 방어선은 임진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예성강 하구와 서해안 연한지대에 축성을 통하여 자비령로와 연안해로도 완점하게 되어 백제 수도인 한성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