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寧王은 昆支의 아들이면서도 東城王과는 달리 정치적 이유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성장하였다. 즉 昆支의 渡倭 중 출산하여 人質的 성격을 띠고 홀로 백제에 돌려보내졌다. 이에 따라 人質로서 武寧王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종교와 학문에 열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蓋鹵王 敗死 후 人質로서의 역할은 끝났으나, 귀국한 父의 사망과 정국의 혼란을 지켜보며 더욱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어 異母弟인 東城王이 즉위하면서 정변에 휘말릴 위험이 증대되었으나, 정치권력의 핵심에 적극 나서기보다 계속적으로 종교생활에 치중하며 안전을 도모하였다고 보았다. 뒤이어 東城王 死後 마흔의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독특한 성장과정과 왕위계승이 薯童說話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武寧王의 왕위계승에 대해서는 정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유력하게 지적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자연스러운 즉위였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다. 즉 東城王의 정치에 대한 불만세력이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苩加에 의해 東城王이 被殺되었고, 이에 東城王의 後繼가 없거나 幼年이라는 이유로 武寧王이 즉위하였다고 보았다. 武寧王은 前王의 兄으로서 인자한 성품과 인물 됨됨이로 왕에 추대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