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隋代의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
Ⅲ. 唐代의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
Ⅳ. 맺음말
요약
고구려와 백제만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가 극히 적어, 중국 통일왕조인 수당의 등장이 삼국간의 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수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새로운 통일국가인 수의 등장은 고구려나 백제에게 다 같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백제는 수를 통하여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하였으며, 고구려 역시 수와의 군사적 대결을 상정하면서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신라의 급격한 성장을 저지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백제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이때 고구려와 백제는 각각 수를 중심으로 상호 이중외교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태종이 고구려를 친정한 645년 전기까지는 당이 한반도의 상황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현상유지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의 등장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삼국은 계속적으로 견당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돌궐을 평정한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당이 한반도의 상황에 직접 개입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640년 당은 마침내 서역의 고창까지 제압하였다. 이제 당은 고구려 정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확실한 명분과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연개소문은 정권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당의 실제적인 힘을 인정하고 당과 계속적인 교류를 원하였다. 그러나 당태종의 태도는 완고했다. 이에 고구려는 후방의 안정을 위한 백제의 도움이 절실했다. 백제 역시 친신라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당에게 불만이었으며, 아울러 수를 멸망으로 이끈 고구려의 힘을 무시할 필요도 없었다. 백제는 당과 고구려의 이중외교를 견지하고 있었으나, 당은 백제의 이러한 태도를 시정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645년 5월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친정하였다. 645년 9월 당 태종은 어쩔 수 없이 회군하였다. 이제 백제는 견당사 파견을 중지할 정도로 고구려와 한층 가까워졌으며, 드디어 655년에는 고구려와 합동으로 신라와 북계 30여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와 합동 군사작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655년 이후에도 계속 당으로부터 소규모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뜻하지 않게 백제가 너무 일찍 항복해버려 원군을 파견하지도 못하였다. 연개소문 사후 자체 내분도 있었지만, 결국 백제의 멸망은 당과 신라의 협공에 의하여 고구려의 멸망을 재재촉한 셈이었다고 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