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백제전역기 정치세력의 변화를 검토함으로써 문무왕대 권력구조의 한 단면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眞珠는 여러 정치적사건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왕 지지세력이 왕권세력으로 그 존재양태의 변화를 시도할 때 일정한 견제를 받았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진주를 백제전역이라는 비상적 상황에서 타협의 측면에서 병부령에 임명하였고 진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백제를 패망시킨 문무왕대 초 삼국통일전쟁의 정치적 원인의 일정 부분 소멸이 국내 정치세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임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백제의 패망이라는 비상적 상황의 해소와 투항세력의 왕권세력화로 말미암아 왕권세력에 의한 정치세력 변화의 기도가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대백제전역이 끝나기 전 문무왕대 초의 정치세력 재편의 특징은 지지세력을 포섭한 왕권세력의 확대와 진주와 같은 귀족연합세력의 제거에 있었다. 문무왕 5년 中侍의 교체와 왕자 문왕의 죽음은 왕권세력이나 귀족연합세력에게 영향을 미쳤다. 왕권세력은 政明을 태자로 책봉하여 후계체제를 확정하고 태자비를 매개로 유력한 진골귀족을 자파세력으로 포섭하여 세력의 유지와 확대를 기도하였다. 백제전역이 마무리되는 시기의 정치세력의 변화는 문무왕 4년 中侍의 교체와 왕자 문왕의 죽음, 정명의 태자책봉, 태자비를 매개로 한 왕권세력의 확대였다. 한편 군단의 편성이나 운용에서 항시적인 것 보다 임시․비상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은 왕권세력이 귀족연합세력의 병권 장악을 여전히 경계했음을 말해준다. 바꾸어 말하면 그 만큼 정치․군사적 상황 변화의 요인으로써 웅진도독부․고구려․당 등이 중요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요인들이 정치세력 변화의 독립변수는 될 수 없을지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혹은 복합적 작용으로 역관계의 변화를 획책하거나 초래할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대 백제전역이 일단락된 문무왕 5년은 정치세력 간의 역관계에서 전과 다른 변화가 일어났을 것임은 당연하다. 왕권세력들은 백제전역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정치세력의 역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