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상호 교섭을 시작하고 이들의 관계가 4세기 중엽까지 변화하는 과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3세기 말 진군현의 쇠퇴에 따라 3국은 처음으로 상호 교섭을 시작했다. 고구려가 진군현의 후방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충돌했고, 신라에 대해서도 공세적 탐색을 벌였다. 백제는 고구려에 대해 방어적 태도를 취한 반면 소백산맥 교통로를 장악하기 위해 신라를 압박했다. 성장이 늦었던 신라는 진한 지역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고구려․백제에 대해 수세적 태도를 보였다. 이 시기에 삼국의 교섭은 탐색의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314년까지 진군현을 축출한 고구려는 이 지역의 안정적 지배와 요동으로의 진출에 힘을 기울여 백제․신라에 대해서 현상유지 정책을 추구했다. 이를 이용한 백제는 낙동강 상류 방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신라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삼국 간의 교섭은 외교적 견제와 균형의 구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제한적 경쟁의 수준에 머물렀다. 340년대 후반부터 고구려는 전연과의 관계 정상화를 기반으로 남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유례왕의 신라를 공격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부담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우호관계로 들어갔다. 4세기 중엽부터 신라는 김씨 왕실의 지배권 안정과 선진문물의 수입을 위해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회복했다. 백제는 신라를 공격해 두 세력의 연결을 차단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고구려와의 우호관계가 종속적 화친관계로 변질되자, 신라는 백제에 손을 내밀어 고구려․백제에 모두 화친을 표방하는 이중정책을 폈다. 이상이 보여준 삼국 간의 교섭은 4세기 후반 이후 치열한 상호경쟁을 준비하는 과도기적 형태를 띠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