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와박사 파견에 대한 문헌·고고학적 검토
III. 사비시대 요업체계와 와박사
IV. 와박사의 대신라 파견과 백제계 와당의 탄생
V. 와박사의 대왜 파견과 가람불교의 성립
VI. 결론
요약
백제 瓦博士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日本書紀』에 그 편린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의 瓦當을 상호 비교해 보면 백제 와박사에 의한 製瓦術(기와 제작술)의 對신라 전파 또한 추측케 한다. 백제의 원형 突起式 와당은 공주의 艇止山遺蹟을 비롯해 公山城, 大通寺址, 軍守里廢寺址, 陵寺址 등 웅진사비시대에 고루 사용되었고 사비천도 후, 즉 6세기 중엽 초반경에는 신라의 月城 등에 전파되어 백제 와당의 대외교섭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백제 製瓦術의 對신라 전파 주체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당시 중국 남조와 백제, 그리고 백제와 倭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백제 와박사의 존재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들에 의해 전파된 製瓦術은 신라의 瓦工들에 의해 新羅化되면서 6세기 후반~말경부터는 독창적인 신라의 원형 돌기식 와당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한편, 蘇我馬子의 요청으로 倭에 파견된 백제의 와박사로 말미암아 일본의 사원 건축에는 기와가 사용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瓦窯가 제작되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須惠器工을 瓦工으로 변화시키는 窯業分化의 촉진이 이루어졌다. 한편, 이러한 陶工에서의 瓦工으로의 변천은 백제나 신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와박사는 이들 도공, 와공을 관리할 수 있는 master와 같은 존재였고 그 역시 국가의 수공업체계에 포함된 존재였다. 백제의 와박사는 그 동안 실체파악을 위해 여러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의 출현과 분화, 활동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향후 좀 더 면밀한 백제 瓦窯 및 와당, 토기 등의 연구를 통해 극복하여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