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연합군의 협공으로 나라를 뺏긴 백제유민들은 어떠한 양상으로 저항운동을 계속하여 왔던가를 전북에 잇는 모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미륵신앙과 관련하여 1,300여년의 저항사를 조명하였다.
백제유민들의 끈질긴 저항운동을 방해코자 신라의 고승인 숭제법사가 모악산 김근사의 주지로 파견되어 백제유민 출신인 어린 진표율사를 등장시켰다. 숭제법사와 신라의 왕실 그리고 진표율사와의 삼각관계에서 모악산 금산사에 신라종교체제의 법상종을 개종하였으나 백제유민들의 구국투쟁의 불길은 꺼지지 않은 채 계속되다가결국에 가서는 완산 땅에 후백제를 창건하게 되었다.
고려에 의해 후백제가 망한 후 태조 왕건은 차령이남의 인재등용을 막음으로써 후백제유민들을 철저히 소외시켰으며 11대 문종에 와서 왕실의 친위세력들이 계속하여 모악산 금산사의 주지로 파견되어 사찰을 대규모로 확장함으로써 후백제 유민들의 저항을 둔화시켰다.
조선에 와서는 모악산 금산사 주변에 정여립의 저항적인 정치활동이 있었고 마침내 1589년 기축옥사로 비화되면서 전라도는 엄청난 숙청과 역향으로서 한맺힌 지대가 되고 말았다. 19세기 말 조선의 무능과 탐관오리들은 전라도 유민들을 더욱 괴롭혔다.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하였다. 20세기 초 모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강증산에 의해 창도된 미륵신앙이 새로운 민족종교로 자리를 굳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