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2. 서동의 정체
3. 민간설화의 수용
4. 미륵사 연기설화와 무왕 등극
요약
이 글은 서동전설이 내포한 근원설화를 분석하고 일연이 밝힌 무왕이라는 사실에 충실하며 그에 얽힌 설화의 성격을 밝혀 일연의 의도와 서동이 무왕일 수 있는 근거를 밝히는데 있다.
법왕은 그의 아버지인 위덕왕 재위 시 비정상적인 생활인으로 왕통을 이을 후계자이지만 위덕왕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을 재목감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숙부인 혜왕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다. 그 이후로 비정상적인 생활인인 법왕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궁중밖의 규수와의 사이에서 서동인 무왕을 얻게 된다. 결국 무왕은 법왕의 비정상적인 생활로 인해 왕자와 홀어머니로 나타나는 서민(獨女)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셈이 된다. 이처럼 자격요건이 모호한 무왕 곧 서동이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자 서동의 어린 시절과 지나친 차이는 설화로 발전되어 전승되게 된다. 《삼국유사》의 서동전설은 이러한 숨은 역사적 사실이 설화화되고, 일연의 불교 포교의 의도와 결부되어 완성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무왕전설의 내용은 무왕의 탄생, 무왕의 선화공주와의 혼인, 미륵사 창건이라는 3개의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무왕의 탄생은 과부가 밤마다 찾아오는 남자와 동침을 하고 나서 잉태를 하고 출산을 했는데 그가 훗날 왕이 된다는 것으로 당시 독자적으로 전승되던 야래자 설화의 수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내용이다. 신이한 탄생은 <기이>편의 성격상 무왕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즉 서동을 영웅의 일생을 나타내는 신화의 주인공처럼 수용하고자 한 전승민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소년기에 신라로 잠입하여 들어가 마를 나누어주면서 서동요를 부르게 하고 선화공주와 만나게 되는 혼인삽화이다. 이것은 무왕 설화에서 가장 중심되는 부분으로 민간설화를 수용한 것이다. 설화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의 성격이 운명담당신인데 서동전설에서는 서동이 주인공이고 선화공주는 부인물이다. 이처럼 운명신의 성격을 갖는 민간설화를 수용하여 무왕에 부회시켜 <기이>편에 수록한 것이다. 서동으로 나타는 무왕은 왕이 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운 좋게 왕이 될 수 있었다고 인식했기에 그러한 성격의 민간설화를 차용하여 구성한 것이다.
서동은 실제 인물 무왕이며 그에 따른 설화는 무왕을 신성시하고 영웅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면 서동설화에 왜 미륵사 창건 연기삽화가 접맥되었는가? 미륵사 창건 연기 삽화의 해석도 무와으이 탄생, 혼인 설화와 별개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에서 통치자가 왜 미륵사를 창건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라는 측면에서 고구해야 할 것이다.
백제가 마한의 중심지였던 익산 지역으로 진출하려 하였을 때 당시에는 농경 문화의 일환으로 農神(水神)에 대한 신앙 기반이 있었다. 무왕은 그 신앙 기반을 병합하여 익산지역 진출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와 같은 신앙의 터전을 미륵하생신앙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그 결과 마한의 중심지였던 익산 지역을 완전 지배하게 됨은 물론 일시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웅비의 발전을 기해 보려 했던 사실이 응축되어 서동전설의 근간을 이루었다. 게다가 무왕을 영웅화시키기 위하여 야래자 설화를 탄생 삽화로 수용하고 개인의 복에 따라 왕이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 전승되던 내 복에 산다계 설화를 수용 전설화시킨 것이라 보인다. 이처럼 서동설화는 내복에 산다계 설화가 역사적 사실과 결부되어 다른 설화와 융합하면서 전설화하여 전승되는 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센터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