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백제와 북조의 관계
1) 백제와 북조의 교류 재개의 배경
2) 백제와 북제의 관계
3) 백제와 북주·수의 관계
2. 백제와 남조의 관계
1) 진의 백제왕 책봉기사의 의미
2) 백제와 진의 관계
맺음말
요약
위덕왕대 백제와 남북조 왕조들의 교류를 살펴보면 북조와 더 빈번하게 교류한 사실이 확인된다. 백제는 567년 진과 북제 모두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때 남북조 양국에 동시에 사신이 파견된 사실이 주목되기는 하지만, 더욱 유의해야 할 점은 백제가 북조와의 교류를 재개하였다는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대외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국제적 환경에 주목하였다. 위덕왕대 백제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커다란 변화를 살펴보면, 첫째, 백제가 한반도내에서 고립하게 되었으며, 둘째 신라가 남북조와 직접 교통할 길이 열리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셋째 백제가 북조와 교류를 재개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모두 백제의 한강유역 회복과 상실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앞의 두 가지 사실은 백제의 북조와 교류 재개, 그리고 북제에 이은 북주․수 등 북조 왕조들과 밀접한 관계 유지에 자극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567년 백제가 처음으로 외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진 뿐만 아니라 북제에도 사신을 파견하고 있으며 577년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자 또한 진과 북주 양국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최초의 사신파견과 중국대륙에서 격변이 있는 시점의 사신 파견에서 남북조 양쪽 모두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위덕왕의 능동적인 자세가 엿보인다. 남북조관계를 적절히 이용하여 한반도내에서 신라에 대적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외교관계에서 의도하는 바는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을 것이나 본고에서는 위덕왕대 외교에서 북조 왕조의 등장과 거기서 그치지 않은 밀접한 교류에 주목하고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이유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백제 위덕왕대 남북조 외교는 남조를 배제하지 않았으나, 북조와의 관계에 치중하였다. 이는 백제가 기존에 견지했던 남조 일변도의 외교와 비교할 때 획기적인 변화였고, 당시 삼국간의 역관계 변화와 국제 정세에 대한 위덕왕의 발 빠른 대응이며 반영이었다. 한강유역의 확보로 뒤늦게 남북조 외교에 뛰어든 신라의 경우 진과의 교류로 일관하고 있는 점에서 신라의 남북조외교가 국제정세 변화에 대처하는 측면은 미미해 보인다. 다시 말해 신라의 남북조 외교는 정치·외교적인 측면보다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데,7진과 교류에서 불교 관련 기사의 비중이 큰 사실로 설명된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각자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조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하여 외교관계를 적절히 조절·변화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양상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