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5세기에 있어서 왜와 한반도제국
III. 5세기초기의 한반도 정세와 왜ㆍ백제관계
IV. 나제동맹의 결성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
V. 웅진천도 이후의 왜ㆍ백제관계와 나제동맹
VI. 맺음말
요약
5세기의 왜ㆍ백제관계는 "나제동맹"의 추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4세기말에 고구려와의 무력충돌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백제는 일시적으로 고구려에 귀속되였지만, 머지않아 이러한 관계를 파기하고 왜와 군사동맹을 결성하여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한편 같은 시기에 왜병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해있었던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며, 이후 고구려에 종속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5세기전반이었다. 신라가 점차 고구려의 세력권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자 백제는 신라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5세기중반에는 양국 사이에 나제동맹이 결성되어 고구려의 공격에 공동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특히 웅진천도 이후인 5세기중반 이후는 나제동맹의 절정기로써, 백제와 신라는 연계하여 종종 고구려 군을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활동으로 "혼인동맹"이 성립되었다.
5세기중반을 중심으로 한 시기의 왜ㆍ백제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일본서기』에 극히 일부분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료의 잔존문제도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왜와 백제관계가 소원해진 결과에 따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461년 곤지를 왜에 보내는 것으로 다소 개선되었으나, 웅진천도 이후 왜가 백제왕권에 개입하였다는 『일본서기』의 기술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국의 관계가 긴밀해 지고 군사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은 6세기초반 이후였다.
백제에 있어서 군사동맹의 상대는 결코 왜국만이 해당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왜국에 있어서도 백제는 선진문물ㆍ기술 등의 유일한 공급원이 아니었다. 양국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나제동맹기에 양국의 관계는 상당히 소원해졌으며, 왜국은 가야제국과 더불어 영산강유역세력과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있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