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중심으로 관련 사료를 살펴 본 결과, 정치적인 망명을 제외하고 주로 가뭄이나 홍수, 질병, 병충해 또는 전쟁으로 인한 고역 등으로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할 때 流亡이 일어났다. 유망에 의해 발생한 유민은 부랑집단이 되기도 했고, 도적이 되어 국가의 통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나 신라로 越境해 가는 이들도 있었다.
유민의 발생은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파악 내지 통제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조세와 역역의 원천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성시기 백제 국가는 재생산 기반을 지원하는 진휼책과 권농책, 그리고 직접적인 혜택으로써 농민의 조세 부담을 경감하는 조세 경감책, 영역 확인과 백성들의 위무를 겸한 巡撫 등을 통해 백성을 구휼하고 위무했다. 또한 수취체제와 지방통치 제도의 정비를 통해 백성에 대한 파악과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유민의 발생을 방지하고 백성의 생산기반을 안정시킴으로써 지속적인 조세 수입원의 확보에 노력했다.
따라서 백성에 대한 국가의 관리나 통제에 있어서, 백제 국가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 살펴 본 民에 대한 통제와 조율 능력은 한성시기 백제 국가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게 해 준다. 백제 국가는 民에 대한 다양한 통치를 바탕으로 자기 관리와 수호의 기능을 하는 고대 국가의 모습을 한성시기 초기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