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백제의 문서목간과 문서표지용 꼬리표목간을 분석하여, 백제의 문서 생산, 보관, 폐기방식 등을 검토하였다. 우선〈능산리 사면목간〉을 통해, 당시 백제에서 최종 장부를 정리하기에 앞서 사면목간을 중간 정리용 메모장으로 사용하였고, 메모의 기능이 다한 뒤, 기존의 묵서를 깎아내고 또 다른 내용의 메모장으로 여러 차례 재활용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관청의 결산보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세세한 出納에 관한 일상적인 메모가 그때그때마다 필요한데, 이 경우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목간이 가장 효율적인 서사재료로 애용되었다.
이어 관북리 목간을 활용하여 문서의 정리와 보관 방법을 검토하였다. 관청에서는 방대한 양의 문서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들을 분류·정리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卷軸을 이용해 말아놓는 두루마리 종이문서의 경우, 그 문서의 명칭을 권축 자체에 기록하여 標識로 삼았는데, 크게 題簽軸과 木簽軸 등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백제에서는 이보다 더욱 세련된 꼬리표목간을 문서의 표지로 권축에 매단 것도 확인된다. 〈관북리 283호목간〉은 중국 漢代의 표지용 목간인 楬과 형태가 유사하고, ‘兵与記’라는 장부명칭이 묵서되어 있다는 점에서, ‘兵与記’라는 장부의 표지로 기능한 꼬리표였다고 생각된다. ‘兵与記’는 두루마리(卷子本) 형태의 권축문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문서의 보존과 폐기방식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문서목간의 가장 손쉬운 폐기방식으로는 태우거나 목간의 묵서를 削刀로 깎아내는 방법이 있다. 백제목간에서는 이 외에도 목간 자체를 삭도로 두 쪽 혹은 세 쪽 이상으로 절단하는 폐기방식이 확인된다. 이는 고대일본의 郡符木簡에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특히〈관북리 283호목간〉처럼 목간의 상단부를 조금씩 차례차례 조각내 부러뜨리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고대일본의 목간 廢棄行程과 동일한 목간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이는 백제멸망 후 백제 관인층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으로 백제의 문서생산과 폐기방식 등이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결국 백제에는 문서의 오용을 막기 위해 문서목간을 일정한 방식으로 폐기하는 관례가 관인사회 내에 존재하였고, 이것이 양국 사이에 동일한 정형화된 폐기행정이 발생한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