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황산진과 가야진의 위치
1. 황산진의 위치
2. 가야진의 위치
Ⅲ. 황산진․가야진의 개설과 그 의의
Ⅳ. 맺음말
요약
본 논고는 삼국시대 황산진과 가야진을 둘러싼 신라와 가야세력의 동향을 살핀 것이다. 황산진은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황산역터 근처에 위치하였고, 가야진은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용당마을 및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창날마을에 위치하였다. 조선 세종대에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의 낙동강, 즉 玉池淵에서 용이 나타나자, 거기에 위치한 나루 역시 가야진이라고 명명하였다. 황산진은 낙동강 물이 세 갈래로 갈라지기 전의 낙동강가에 위치하여 그 중ㆍ상류를 연결하는 수로교통의 요지에 해당하였는데, 신라는 3세기 후반에 그것을 기반으로 낙동강 수로를 확고하게 장악하여 금관가야를 압도 하고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늦어도 5세기 초반부터 신라는 화명동 용당마을에 위치한 가야진을 통하여 금관가야를 압박하다가 마침내 532년에 금관가야를 정복하고 영토로 편제시켰다. 금관가야의 병합 이후 신라는 卓淳國을 정복하고, 이어 함안군 칠원면 무릉리 산성마을의 城山으로 비정되는 백제의 仇禮山城을 공격하여 차지하고, 거기에 신라군대를 주둔시켜 아라가야를 압박하였다. 544년 무렵에 百濟 聖王은 南江을 통하여 남지읍 용산리의 가야진을 차지한 다음, 그 근처의 6城에다 왜군과 백제군을 배치하여 구례산성에 주둔한 신라군을 고립시켜 항복하게 만들고 탁순국을 再建하려는 계책을 세웠다가 실현에 옮기지 못하였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