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백제의 중국식 관제 수용사례
III. 백제 정치제도에서의 기능
IV. 맺음말
요약
장군호, 왕․후, 태수, 부관을 중심으로 그 수용양상과 정치제도상의 문제를 검토해 보았다. 5세기 백제에서 등장하는 중국식 관제 중 장군호와 왕․후는 주로 관등제와 지방통치제도를 보완할 목적으로, 태수-부관제는 왕의 측근세력을 형성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들 각각의 관제 수용에 대한 백제의 태도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것은 결국 국제정세 내지 국제 질서에 따른 수용과 토착적 요인에 의한 변용의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장군호의 경우 명칭은 물론 서열 표시라는 기능까지도 거의 비슷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태수-부관제의 경우에는 명칭은 그대로 수용하였지만, 실제 기능에서는 외교 중심과 측근세력 형성이라는 쪽으로 백제의 현실에 맞게 고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왕․후의 경우 좌․우현왕은 명칭과 기능 모두 거의 그대로 수용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지명을 관칭하는 왕․후는 명칭도 백제의 지명을 관칭하였다는 점에서 그대로 수용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기능도 포상의 측면은 동일하지만 지방통치제도와의 관련성이라는 측면을 새로이 첨가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해 보면, 장군호와 좌․우현왕은 국제정세 내지 국제질서에 따른 수용의 측면이 강하고, 태수-부관제는 그러한 측면으로 수용하였으나 토착적 요인에 의한 변용도 함께 이루어졌으며, 지명을 관칭하는 왕․후는 토착적 요인에 의한 변용의 측면이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직 완전하지 않은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는 데에 5세기의 중국식 관제가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