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초기 백제사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한 논문이다. 기본 전제는 백제 주변국의 역사가 근초고왕 때 『서기』를 편찬하면서 백제 중심의 역사로 기록되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백제 초기사는 백제 중심의 시각만 제거하면 상당수 기록을 되살릴 수 있다는 사료의 ‘재해석’을 주장한 것이 본고의 특징이다.
백제 주변 지역 중 가장 주목되는 세력은 진씨였다. 진씨는 처음 우보라는 관직을 맡으면서 등장하였다. 그런데 초기 백제 관직인 우보와 좌보는 고이왕 14년 이후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이 무렵 좌장․병관좌평 등이 새로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의 업무가 군사 분야와 관련이 있고 순차적으로 설치된 것은 업무의 분화와 체계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백제 왕국의 외연적 확대를 확인해준다. 그리고 고이왕 때 인명 앞에 부가된 부의 명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점차 중앙정부 속에 편입되고 있는 진씨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북부 세력인 진씨의 근거지로는 육계토성 등이 있는 적성 일대로 보았다. 이는 이곳에서 일찍부터 백제와 관련이 있는 유물이 출토되었고, 말갈과 낙랑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요지였음을 고려한 결과이다. 백제는 진씨 세력의 귀부로 말갈의 군사적 압박을 물리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진씨 세력 또한 백제와 연합하여 중국 군현의 압박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였다. 결국 진씨는 부명이 부가된 시기에는 상당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면서 백제와 연합하는 형태를 유지하다가 기리영 전투 이후 점차 백제의 유력한 지배 세력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