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수도 한성의 함락과 문주왕의 즉위
III. 웅진 천도 직전 한성의 상황
IV. 웅진의 재지 세력과 백제 복속
V. 문주의 지역적 기반과 웅진
VI. 맺음말
요약
서기 475년에 고구려의 침공으로 한성을 함락당하고 왕이 패사하는 위기상황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참담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였다. 고구려는 싸움이 끝난 직후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한강 이남의 한성이 항시 고구려의 위협 속에 있게 되어, 백제의 국가적 물적 기반과 외교 활동에 필요한 기능과 조건을 충족시킬 대체 지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공주, 화성, 청원, 원주 등 서기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조영된 횡혈식 석실분을 통해 근초고왕대에 이미 웅진을 포함하는 충남의 대부분 지역이 백제의 영역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주왕은 금강을 통해 서해로 나아갈 수 있고, 남쪽에는 너른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관방뿐만 아니라 교통과 경제의 요충지로서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웅진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웅진은 이미 개로왕 4년(458)에 보국장군으로 임명되었던 문주의 지역적 기반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새 수도로서 웅진의 천험적요지라는 입지 조건 때문이 아니라 천도의 당사자인 문주와 웅진의 관계 내지는 백제 지배층과 웅진(공주) 지역의 유기적 관계가 가장 기본적인 천도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