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소금 루트 확보와 백제 위례성
3.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 본 풍납토성 사람들의 식생활 문화
4.『齊民要術』을 통해서 본 중기 백제인의 식생활 문화
5. 맺음말
요약
기원전 18년 경 이들이 한강 유역에 백제를 세울 때, 한반도의 기후조건 등에 따른 저장 가공 음식의 요구량 증대에 의하여, ‘인천에서 생산된 소금 → 한강수로 → 풍납토성’이라는 ‘소금교역로’를 건설했으며, 백제의 세력 확장 비결은 서해안에 존재한 소금 산지의 독점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소금교역로’로 이용되었던 한강수로는 五銖錢을 사용한 對郡縣과의 교역로로도 이용됨으로서, 백제 前期(B.C 18~260)에는 漢代의 식생활의 영향을 받아 기존에 지니고 있었던 소금을 이용한 저장 가공 음식에 더하여져 ‘중국과 같으나 火食하지 않고’ 저장 가공식품 위주의 冷食 음식으로 구성되게 된다.
백제에서는 당시 黍(수수), 稷(차조), 麥(보리), 粟(메조), 菽(콩)을 5곡이라 하였으며 쌀[稻]은 별개였다. 비류왕 27년(330) 연인원 322,500명이 동원되어 김제에 1,120만 여평에 달하는 최대의 저수지가 만들어진 이후, 백제 중기에는 쌀이 粟을 젖히고 주곡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산동반도의 태수였던 賈思勰(386~535)이 『齊民要術』을 저술하였던 시기는 백제가 요서를 진출한 시기 및 만주가 백제인의 활동무대였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기이면서 같은 東夷文化圈이기 때문에, 『齊民要術』속에 기재되어 있는 무쇠 솥을 이용한 밥, 무쇠 솥을 이용한 튀김․지짐․볶음요리, 수수술․찹쌀술․멥쌀술․차조술․메조술․약주, 꽃소금, 메주, 간장, 겨자장, 새우젓, 게젓, 국, 찜, 김치, 엿, 찹쌀떡 등은 백제 중기 민중들이 먹던 음식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