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나라를 세우고 나서 중국사서에는 백제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인식도 그리 되지 않았으나 수도를 사비로 옮겨온 뒤에는 국력을 크게 떨쳐 해동대국으로 성장하게 되니 이때 송서, 남제서, 위서 등 남북조 때에 찬수가 이루어진 정사와 같은 류의 중국사서에서 글을 쓰고 배려한 초점은 외교관계의 수립과 발전에 두고 있었으며 기타 백제 관계 국정과 민속 이해는 오히려 많지 않다.
수에서 당초까지 중국 통일제국이 이어서 형성되어 인근 국가와의 종래의 연결을 강화시키거나 심지어는 인근국가를 제어하려는 요인으로 해서 사자, 승려, 학생, 행상이 계속 이어져 끊이질 않게 되어 중국의 백제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증가시키게 되었다. 당초에 찬수된 주서, 양서, 수서, 남사와 북사 가운데 백제전이 기록되는 기초를 형성하였다. 특히 여러 정사의 기록 차가 크지 않고 백제 정제, 역사, 물산, 민속 등과 관계된 분야에 있어서 상략의 구별만 있는데 더욱이 북사는 주서와 수서를 종합하였고 남사는 양서가 실은 것을 그대로 받아 이어 당태종 고종조의 백제에 대한 인식을 반영케 되었다.
이후 당송시대의 구당서, 신당서, 통전, 책부원구 등과 같은 류의 책에서 백제에 대한 기록은 모두 당초에 정리된 정사와 당대국사, 실록 등에 근거하되 다만 각서의 기록상 상략이 한결같지 않으며 강조하는 바도 차이가 있으나 당대 사관에서 수집하고 찬수한 정부측 사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일반적이며 이에 따라 당 고종대에 백제가 패망한 뒤부터 당나라 사람들의 백제에 대한 인식은 이전의 사서를 겨우 답습할 수 밖에 없었고 당송시대 정리된 사서는 자연히 더 더욱 진일보한 이해를 모색하였을지라도 기록에 있어서 과거 사서내용 범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