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암리 목간은 백제 최초의 지방목간 출토 사례이다. 그 다양한 형태와 서식은 이후 백제 지방 목간연구의 기초사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방사회의 문서목간이 호적의 작성을 전제로 다양한 서식을 보이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종래, 방-군-성제의 아래에서 백제 지방통치의 실태와 이를 운영한 문서행정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복암리 목간은 7세기 초의 백제 지방행정의 말단 기구에도 문서행정이 일상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그런데 평천남(平川南)씨는 고대 일본의 지방목간의 특색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앙의 관청에 비해 지방 관청의 기구는 미정비된 점이 많고, 문서행정의 실태도 중앙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고 추측된다. 따라서 문서목간의 기재방법에 대해 다양한 공부가 행해지고 중앙관가에 보이지 않는 특유의 기재방식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아직 목간의 출토수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차이가 많으나 다양다종의 목간이 출토된 복암리 백제목간을 시작으로 한국 출토의 지방 목간을 분석하는 지침으로 명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