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국가형성 문제는 사료부족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성격문제로 연구의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본고에서는 삼국지 동이전의 내용을 시간선후로 배열하여 단계화하고 각 단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기사를 분해하여 적용시켰다.
이를 통해 얻은 국가형성 과정은 읍락-소국-소국연맹-부족제-집권적통일국가 단계로 정리되며 백제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가를 형성해간 것으로 파악된다.
한강유역에서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진국세력이 위씨조선의 멸망에 의해 파생된 유이민파동의 충격으로 해체된 후 한강유역의 각 지역에는 새로운 소국들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소국 중 하나가 부여족 계통의 일파인 온조집단이 십신의 도움을 얻어 세운 십제였다.
십제의 형성에 참여한 십신은 선주 토착세력인 십촌의 장으로 읍락수장에 해당되며 읍락을 통합하여 십제라는 소국이 형성된 것이다. 십제의 중심지는 하북 위례성이었으나 하남위례성으로 중심지를 옮기고 국호도 백제로 개칭하였다.
하남 위례성의 백제는 미추홀 비류집단과 결합하여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지역연맹체를 형성했고 초기 비류계가 주도하였으나 온조계가 장악하게 되었고 근초고왕대 연맹장의 교체에 의해 왕성도 해씨에서 부여씨로 바뀌었다. 연맹체 주도권을 장악한 백제는 3세기 목지국 병합을 이룩하여 마한 맹주국의 위치를 확보하고 연맹내 세력들에 대한 통합운동을 강화하여 5부체제를 성립시키고 이전의 족장들은 저차 중앙귀족으로 전환되고 이들을 질서화하기 위해 16관등의 지배체제를 수립하고 족장회의체로서 좌평을 의장으로 하는 회의체를 성립하였다.
그러나 오부제하에서도 유력족장들은 독자의 지배기구, 제사체계를 갖는 정치적 분립성이 잔존하였고 이를 극복하고 왕권중심의지배체제가 수립되는 것은 초고계의 왕위계승권이 확립되고 진씨가 왕비족으로 등장한 이후이다.
근초고왕대 백제는 고대국가체제 운영을 위해 족장의 정치적 분립성을 해체하여 중앙귀족화하고 일원적 관등체계를 마련하였다. 확대된 지배영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왕정의 물적기반확대를 우해 지방통치체제를 정비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또한 국사의 편찬을 통해 유교이념을 강조하여 왕실중심의 정치이념을 추구하고 침류왕대 불교 공인으로 왕권중심 지배체제의 사상적 통일을 기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