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백제와 낙랑, 말갈, 마한 대외관계 기사의 검토
Ⅲ. 백제와 고구려 관계 기사의 검토
Ⅳ. 백제와 신라 관계 기사의 검토
Ⅴ. 맺음말
요약
百濟本紀에 보이는 百濟와 新羅의 관계 기사는 신라측에서 전승된 자료에 의해 찬술된 共有記事가 대부분이었다. 즉 百濟와 新羅와의 대외관계를 보여주는 백제측 전승 자료는 극히 제한된 범위에 불과했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의 대외관계 기사의 紀年은 신라측 자료가 갖는 기년상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재조정하여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도 몇몇 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6세기 중반 이후 백제와 신라의 충돌이 격화된 이후의 사정을 전하는 기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년상의 문제는 신라측 전승 자료 내지는 新羅本紀 기사의 紀年 문제와 연관하여 풀어갈 문제이다.
다음 百濟本紀의 백제와 고구려 관계 기사는 대부분이 백제측 전승 자료에 의해 편찬된 기사이다. 그 중 熊津으로 천도한 이후에 나타나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군사 同盟과 관련된 기사는 신라측 전승 자료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백제와 고구려의 대외관계 기사에서 등장하는 雉壤城ㆍ水谷城ㆍ浿水라는 지명은 백제인의 영역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熊津으로 천도한 이후에 등장하는 한강유역 관련 기사는 4세기 후반~5세기 후반 대의 기사가 뒤섞인 결과로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백제측 전승 자료에도 熊津 천도 이후 고구려와의 관련 기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즉 백제측 전승 자료도 기본적으로는 漢城에 도읍하였던 시기인 近肖古王~蓋鹵王代에 고구려와 각축전을 벌일 때의 기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靺鞨, 樂浪과의 관련 기사 역시 전시기에 걸쳐 분포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漢城都邑期의 사실을 반영하는 기사가 분산 기술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기사들은 전적으로 백제측 전승 자료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百濟本紀에 기술된 대외관계 기사 중에서 백제측 전승 자료는 靺鞨 관련 기사와 4세기 중후반~5세기 후반의 高句麗와의 관련 기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