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양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양서』를 비롯한 자료에 외교교섭의 기록이 적고, 무령왕이 즉위한지 20년이 지난 521년에 최초로 사자를 보냈다는 기록도 이상하며, 그 기간만 견사가 이루어졌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遣使授爵表에 따르면 백제가 최초로 양과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512년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왜 그러한 대양외교가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동성왕의 죽음과 무령왕의 즉위와 관련해 추측하였다. 필자는 무령왕에 대해서 동성왕과 이복형제라고 생각한다. 동성왕은 국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고, 무령왕은 그러한 쿠테타를 통해 즉위했으며, 이는 통상의 왕위계승과 달랐다. 그러한 즉위의 방법이 양과의 통교가 늦어진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그렇다면 512년의 견사는 왜국 외교를 새롭게 전개하기 위해서 양에 필요한 오경박사 등을 요구한 것, 또는 백제왕실의 代가 바뀐 것을 명언하지 않은 채의 견사였을지도 모른다. 즉 새로운 왕인 隆으로서의 견사인 것을 언급하지 않은 채의 견사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