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왕족 파견의 초기 사료 검토
III. 왕족 파견의 변화와 그 실체
IV. 초기 왕족 파견의 성격과 역할
V.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 필자는 백제에서 왜로 파견된 왕족의 역할과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日本書紀는 일본 중심적 관점에서 백제계 사서를 이용하여 부족한 초기 사료를 보완하였다. 자국 중심의 역사 서술을 하였으나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여 원 자료의 실체를 밝혀보자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왕족 파견의 기사를 검토해보니 곤지와 전지가 파견된 6세기 이전과 이후는 차이가 났다. 왕위 계승권을 가진 실력자가 파견된 점은 분명한 실례다. 곤지는 야마토 왕조의 수도에 거주하지 않고 한반도계 渡倭人들이 밀집된 지역인 카와찌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곤지는 한반도계 도왜인들을 백제 중심으로 규합하여 야마토 왕조에 협력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백제가 야마토 왕조에 협력한 것은 무엇보다 일본 열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도 관련 있지만 백제를 즉각 지원해줄 수 있는 단일화된 힘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야마토 왕조 또한 백제계 도왜인들이 개발한 카와찌 지역의 생산력과 그들이 가진 선진문물이 주변 소국을 제압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우월한 도왜인들을 묶어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곤지와 전지의 파견은 이러한 양자의 입장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6세기 이후 국가체제의 정비가 본격화되면서 국가 간의 구별이 명확해지고, 점차 국가 의식이 강화되었다. 이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넘나드는 세력가 중심에서 국가 간의 공적인 교류로 전환했음을 말해준다. 후기에 이를수록 사절단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왕족의 비중이 낮아진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日本書紀는 백제 말기에 파견된 풍장과 백제 멸망 이후 망명한 왕족에게 백제 왕씨를 사여한 사실을 기초로 백제를 복속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초기 백제 왕족의 파견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비롯되어 왜곡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