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무왕대 후반기의 왕권 강화
Ⅲ. 석가불 신앙의 강조와 미륵사
Ⅳ. 맺음말
요약
이 글에서는 익산 미륵사 서탑의 사리 봉안기를 통해서 백제 무왕대의 정치적, 사상적 동향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무왕을 대왕 폐하로 언급하는 익산 미륵사의 사리 봉안기의 내용은 무왕 후반기인 639년에 들어와서 백제의 왕권이 계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이를 바탕으로 백제는 의자왕대의 전제정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사리 봉안기에서는 석가불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석가의 권위를 빌어서 왕권의 강화에 이바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익산지역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의 미륵신앙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이들은 미륵불 신앙을 통해서 익산지역을 미륵이 하생하여 성불하는 이상적인 지역으로 관념화시키고 있었다. 그 중심을 석가불이 다스리는 부여에서 미륵불이 다스리는 익산으로 이동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왕권에 협조하며, 부여를 세력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사리 봉안기에 보이는 사택씨 세력이 대표적이다. 이에 이들은 익산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에 대해서 대항하는 새로운 사상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때 불사리 신앙이 다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미륵불이 아니라, 석가불이라는 것이다. 사상에서나, 정치에서도 석가, 즉 국왕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익산의 미륵사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익산 역시 백제 왕실이 추구하는 석가의 불국토에 포함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이후 익산세력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익산천도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의자왕의 즉위 이후 불교보다 유교를 더욱 강조하게 된 사상적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