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백제의 세계관
II. 부여 의식의 강조와 북방문화
III. 백제 문화의 개방성과 국제성
IV. 고대동아시아공유문화권의 형성
요약
백제의 세계관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칠지도와 미륵사이다. 칠지도는 백제가 왜왕을 제후왕으로 인식한 것을 보여준다. 삼탑-삼금당으로 이루어진 미륵사의 가람구조는 백제를 중심에, 좌우에 신라, 고구려를 두고 공존하겠다는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다.
백제 시조 온조는 졸본부여 계통이다. 그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첫 번째 아들한테 밀려나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고구려와의 대결 과정에서 부여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백제 문화의 기반은 중국 문화와는 다른 북방문화였다. 북방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중국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금동으로 만든 冠과 신발이다. 백제에서 다수 확인되고 있는 금동제관과 신발은 백제문화가 북방문화와 계보를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서』 백제전에 의해 무령왕-성왕대에 백제가 북위와 교섭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의 정림사가 북위의 낙양 영녕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 그 증거가 된다. 성왕 때의 사비도성 또한 남조뿐 아니라 북조의 도성 구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편 백제는 인도로부터 계율과 관련되는 불경을 직접 가지고 와서 백제 계율을 만들었다.
백제는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신라, 가야, 왜에 전수해 주었다. 이는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및 일본열도가 共有文化圈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