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전쟁과 외교 속에서 형성된 우호관계
3. 왜왕권의 성장과 백제문물
4. 일본 율령국가의 형성과 백제 망명인
5. 맺음말
요약
일본 고대국가 형성과정에 있어서 백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양국간 친연관계의 직접적 계기는 한반도 제국의 전란으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합되었다. 백제에서 왜왕권에 기대했던 것은 군사력이었고 이에 부응하듯 왜왕권에서는 병력, 군수물자 등 군사력과 관련된 것을 제공하여 군사동맹국으로서의 강한 유대관계를 맺어간다. 양국은 이러한 역사적 교류 속에서 고대 동아시아 최고의 우방으로 수백 년간 친연관계를 지속해나갔다.
백제에서 왜국으로 전해진 전략문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문자지식의 전수자 왕인과 아직기를 비롯하여 왕진이 등은 왜왕권 내에서 문서행정의 선구자로서 백제의 선진적 기록문화를 전수하고 정착시켜나갔다. 문자행정이야말로 미개에서 문명으로, 원시에서 고대사회로 이행해나가는 매체이자 척도였다. 문화의 수용은 이들 문자지식에 의해 수용되는 것으로 정치제도, 기술문화, 유학과 같은 사상과 학문, 종교 등 모든 문화는 문자를 매개로 해서 진행되어갔다. 특히 5~6세기 일본의 국가형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문물수입을 거의 전적으로 백제에 의존하였다. 백제에서 건너온 기술자집단을 모체로 왜왕권의 각종 직업집단인 부민제가 형성되었고 이들에 의해 생산되는 물품은 국가와 조정에 조달되었다.
왕권 내부의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통해 수용된 불교는 왜국 지배층의 이념과 의식을 새롭게 바꾸어놓았다. 불교문화의 수용에 의해 재래의 고분문화에 대한 전환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사상과 제도의 수용이 가능해졌다. 백제로부터 수많은 승려계층과 사찰의 조영과 불상의 제작, 그림, 음악 등과 관련된 인력이 파견되고 그들이 정주함으로써 왜왕권의 문화는 질적 수준은 크게 향상되어갔다.
백제의 멸망은 왜왕권에 있어 대규모의 선진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왜왕권이 단행한 백제부흥전쟁으로 대량의 인명과 물적 손실을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기대한 수많은 인적자원을 얻었다. 백제로부터 망명한 이들 백제인들이야말로 왜왕권의 새로운 국가건설을 향한 촉매제였으며 주역이었다. 이들의 학문과 지식, 기술은 그대로 왜국에 이식되어 일본의 천황제 율령국가의 형성에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