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고구려 남진정책과 '나제동맹'
III. '나제동맹'의 확대와 가야의 독자적 외교
IV. '나제동맹'의 성격변화와 가야의 대응
V.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나제동맹’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 우선 5~6세기 ‘나제동맹’의 전개 양상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그 다음, 한편으로는 ‘나제동맹’ 구성의 한 축이 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나제동맹’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가야의 대응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또한 종래의 연구주제였던 ‘나제동맹의 기간’문제뿐만 아니라 새롭게 ‘나제동맹의 성격과 그 변화’에 대하여도 시론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나제동맹의 결성 원인은 5세기 고구려 남진정책 강화의 여파였다고 할 수 있다. 5세기 고구려 남진정책은 450년대 재개되어 475년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에 대응하여 ‘433년 화친성립’을 발판으로 삼아 ‘군사동맹으로서의 나제동맹’이 474년에 결성되었고, 475년에는 전해에 맺어진 ‘나제동맹’의 약속에 의거하여 신라군이 백제를 구원하고자 파견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480년대에 들면 고구려와 ‘나제동맹’의 군사적 대결구도에 고구려 측에 말갈이 참가하고 ‘나제동맹’측에 가야가 참여하는 등 외연이 확대되어 가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즉 481년 나제동맹 세력에 가야가 참여하여 ‘신라․백제․가야동맹’으로 확대전환되고, 그것이 가야의 독자적 외교 행보의 결과였다는 점이 ‘나제동맹’의 전개 양상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6세기에 들어서면, ‘나제동맹’의 성격이 점차 변화되었음을 간취할 수 있다. 5세기까지 고구려에 대한 ‘방어동맹’의 성격이 강했다면, 6세기부터는 ‘공격동맹’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고구려뿐만 아니라 가야조차도 ‘나제동맹’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공격대상이 되었던 가야는 ‘나제동맹’에 대하여, 반파의 경우 강력히 군사대응을 했었고, 탁순은 대응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했으며, 안라는 오히려 정치적 위상을 키우면서 고구려와 밀통을 시도하여 ‘나제동맹’을 견제하려 고 했던 점 등, 각각 적절히 대응하고 있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