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사리봉안기에 대한 기초적 인식
Ⅲ. 사택씨의 정치적 위상
Ⅳ. 사택지적의 활동
Ⅴ. 의자왕 초 "大亂"과 사택씨
Ⅵ. 사택씨와 무왕대 미륵사 건립
Ⅶ. 맺음말 - 《삼국유사》무왕조 재검토의 필요
요약
2009년초에 미륵사 서탑의 심주석에서 사리봉안기와 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판사리봉안기는 남조에서 유행한 전형적 병문으로 불교관련지식을 가진 사람이 작성한 것이다. 사찰의 가람을 세우고 사리를 봉영한 기해년은 639年 즉 武王 19년이다. 건립의 주체인 왕후는 좌평인 사택적덕의 딸이다. 沙氏는 5세기 후반부터 백제정계에 두각을 드러내어 6세기 사비시대부터 좌평을 역임한 조정의 핵심세력으로서 부각되었다. 무왕대는 국왕-인척 중심의 정치체제 속에서 沙(沙宅)氏의 권력이 비대화되었는데 미륵사 건립은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종래 신빙되었던 ≪삼국유사≫ 무왕조 기사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