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문주왕에서 무녕왕에 이르는 계보관계
III. 문주왕과 동성왕과의 관계
IV. 문주왕계와 무녕왕
V. 맺음말
요약
백제는 한성기에 한번 멸망하지만 다른 땅인 웅진에서 再興된다. 재흥시킨 문주왕이 도대체 어떤 출자였는지 필자는 그것을 재검토해서 웅진시대 초기 백제사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였다. 『南齊書』百濟傳에 의하면 牟大는 牟都의 손자이고 그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모대를 東城王, 모도를 文周王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그렇다면 동성왕은 문주왕의 손자가 된다. 그것은 南齊 皇帝의 詔書 중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는 극히 높다. 동성왕은 昆支의 아들로 생각되지만, 곤지를 문주왕의 아들로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문주왕의 딸이 곤지에 시집을 가서 태어난 자가 동성왕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즉 문주왕은 동성왕의 外祖父라는 것이다. 그것을 근거로 계보관계를 검토하면 문주왕은 蓋鹵王 어머니의 남동생(叔父)이고 武寧王은 곤지의 아들(동성왕의 異母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주왕은 왕으로서 즉위할 계획이 전혀 예상되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백제 멸망의 혼란 속에서 백제를 재흥한다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즉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계가 백제왕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아들 三斤王을 王位에 오르게 하였지만 早死하였기 때문에 손자인 동성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무녕왕의 즉위는 본래의 왕계로부터의 逆襲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도 무녕왕은 백제 中興의 主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