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東韓之地 관련 기사
III. 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전투의 실상
IV. 東韓之地 등의 지명 비정
V. 맺음말
요약
광개토왕비문에 나와 있는 396년~407년의 기사를 분석해보면 백제가 왜와 화통한 정황, 대방계까지 이른 점 등은 왜가 주도적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 당시 고구려와 백제와의 세력 다툼 속에서 파병된 백제의 지원군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이 있었던 시기의 『일본서기』응신기 관련 기사를 광개토왕비문이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사와 비교하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엽에 고구려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백제에 대해 왜가 군사원조를 한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야마토 정권의 한반도 남부 경영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일본서기』 응신기 동한지지 관련 기사를 검토하면 고구려에 의해 동한지지, 침미다례, 현남, 지침, 곡나 등 백제의 영역이 침탈된 사실이 『일본서기』 편찬자에 의해 일본이 백제의 땅을 빼앗은 것으로 윤색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서기』의 편찬 당시 왜국이 고구려에게 비참하게 패했던 당시의 사실을 율령제 하 일본의 국가관에 기초한 『일본서기』의 사관에 의거하여 일부러 왜의 파병기사를 누락시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송서』에 왜왕이 고구려에 대한 무도함이나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던 상황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과 같이 원래는 『일본서기』의 본 사료에도 고구려의 패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지만, 후대의 개변으로 윤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고구려와 백제가 상쟁하는 접점인 동한지지에 대해 광개토왕비문, 『일본서기』, 『삼국사기』지리지를 총체적으로 고찰한 결과, 고구려가 소백산맥 이남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지역으로 보아 영주, 의성 서북부, 문경을 포함하는 경북 북부 일원으로 파악하였다.
경북 북부 일원은 동쪽에 있는 한의 지역인 동한지지라는 명칭과 일치하는 지역이면서 백제가 낙동강을 통해 동도와 나루를 이용하여 건널 수 있는 위치와 합치되는 곳으로 기존 지명 비정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백제가 5세기 이전부터 한반도 동남부 일원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서기』응신기에 나오는 동한지지의 지명을 고찰하면 5~6세기 당시의 역사상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요구된다. (필자 맺음말)